어느 날 전화를 한통 받았다. 아이가 ‘Excuse me’를 모르는데,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아이가 이 정도의 표현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아이가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당시 아이는 5세였고, 이때는 2학기가 막 시작된 시점이었다. 나는 의아했다. 왜냐면 유치원에서 빈번히 사용하는 기본적인 이 표현을 아이가 모를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세한 상황 설명을 부탁드렸다.
아이가 ‘Excuse me’를 모른다?
학부모는 아이와 놀기 위해 집에 있는 책을 하나 읽었다고 한다. 그 책은 글씨가 별로 없고, 그림이 아주 큰 그림책이었다. 학부모 생각엔 너무 쉬운 단어로만 구성된 레벨이 아주 낮은 책이었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며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아이가 다른 단어는 척척 읽어내면서 ‘Excuse me’는 유치원에서 배우지 않은 단어라 모른다고 했다.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아이는 모른다고 했고, 결국 화를 내며 울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황이 대충 그려졌다. 그래서 학부모에게 질문을 몇 가지 했다.
- 1. 그림책의 제목과 저자는 누구인지
- 2. 책을 읽을 때 아이와 엄마 중 누가 먼저 읽기 시작했는지
- 3. 책을 읽기 전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질문을 듣고 학부모는 자세한 답을 해주었다. 나는 학부모로부터 답을 듣고 나서야 확실하게 상황이 파악되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아이는 본인이 좋아하는 로봇 장난감을 들고 재미있게 만화를 보고 있었다. 마침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책을 읽으며 같이 놀자고 했다. 아이는 만화를 계속 보고 싶었지만, 엄마와 노는 것을 선택했다.
그림책을 하나 꺼내와 책을 펼치자 엄마가 글자를 가리키며, ‘이거 어떻게 읽어?’라고 질문을 했다. 아직 글씨를 잘 읽을 줄 모르는 아이에게도 유치원에서 배운 익숙한 글씨가 보였다. 그래서 대답을 했다. 엄마는 손뼉을 치며 다른 것도 물어봤다. 이번에는 그림을 보고 말했다. 엄마는 잘한다며 또 다른 것을 물어봤다.
계속된 질문에 아이는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그때 엄마가 ‘Excuse me’를 물어봤다. 아이는 엄마에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 아이는 단 한 번도 ‘Excuse me’를 책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 엄마는 ‘왜 몰라?’ 하며 아이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아이는 결국 화가 났다. 그리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부모의 입장이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상황을 설명하다.
“어머님, 먼저 아이가 ‘Excuse me’를 모른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5세 1년 차 아이들은 1학기 내내 영어 소리에 익숙해지는 것을 배웠습니다.
만약 ‘Excuse me’를 소리로 들었다면 아이는 안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본 글자가 아직 생소하여 모른다고 답한 것입니다.
또 어머님이 말씀해주신 책은 절대 낮은 레벨의 책이 아닙니다. 그림이 많다고 혹은 어른이 보기에 쉬워 보인다고 레벨이 낮은 것은 아닙니다. 책의 레벨을 결정하는 것은 책의 단어들입니다. 하지만 그 책의 단어들은 아직 아이가 읽을 수 있는 단어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Excuse me’는 어른들에게는 엄청 쉬운 단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5세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이 단어들을 아이가 평소에 자주 사용합니다. 하지만 한 번도 수업 시간에 책을 통해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소했을 것입니다.
지금 아이는 5세입니다. 글을 읽을 수 있는지 없는지 보다는 영어를 즐겁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당부의 말
우리 아이들은 평소에 한국말만 듣고 쓴다. 그러다가 영어유치원에 오는 순간 갑자기 영어만 쓰게 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아이 입장에서 영어만 사용하는 이 환경이 얼마나 낯설고 적응이 안 될지 상상을 해봐야 한다.
부모가 이미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아이도 알 것이라는 섣부른 생각을 거두시길 바란다. 아이들이라 뭐든 빠르고 쉽게 배우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본인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정리하기도 힘든 상태이다. 다만 지금도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이 노력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며 천천히 아이를 기다려주시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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